주민등록번호, 도전행동, 의사소통 여부 등 개인정보 요구한 서울시당사자 원치 않음에도 ‘현장조사’ 명분으로 집에 찾아가지역에 사는 비장애인에겐 하지 않을 정보 수집… 왜 장애인에게만?
서울시가 지난해 9월 8일부터 올해 2월 21일까지 10차례에 걸쳐 탈시설한 장애인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프리웰지원주택센터를 통해 탈시설 장애인들의 주민등록번호 13자리 등을 비롯한 민감정보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가 원치 않음에도 ‘현장조사’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사는 집에 찾아갔다.
이에 대해 탈시설 장애인들로 구성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는 14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를 인권위에 진정했다.
- 주민등록번호, 도전행동, 의사소통 여부 등 개인정보 요구한 서울시
지난 2월 21일, 언론을 통해 서울시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한 장애인 1천여 명을 전수조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사대상은 2009년부터 2022년까지 거주시설에서 나온 1600명 중 사망자와 서울시 외 지역 거주자를 제외한 1천여 명으로, 조사를 통해 탈시설 과정의 적정성, 생활 전반에 대한 만족도, 건강 상태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탈시설에 반대하는 행보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서울시의 전수조사는 탈시설을 공격할 빌미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했다. 실제 전수조사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조사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음에도 서울시가 만나자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조사하러 온 서울시 공무원이 탈시설운동 활동가를 뒷담화했다는 등의 부적절한 모습이 알려졌다.
그러던 중 탈시설연대를 통해 서울시가 이미 지난해부터 수차례에 걸쳐 탈시설장애인에 대한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서울시가 요구한 개인정보는 광범위했다. 서울시는 탈시설장애인의 개별 이름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 13자리, 연락처, 집 주소, 장애유형과 장애정도, 도전행동 유무와 의사소통 여부, 최중증 사유 등을 요구했다. 또한, 활동지원시간과 활동지원서비스 판정 시 받는 기능제한(x1) 점수까지 요구했는데, 기능제한(x1) 점수는 활동지원수급자격 심사기관인 국민연금공단과 지자체에서도 공개하지 않던 자료였다. 그러다가 2021년 장애인 당사자의 행정소송으로 지난해 6월에야 ‘정보공개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 이후 공개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프리웰지원주택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민재 팀장은 센터에서 근무한 이래 끊임없이 서울시, 시의원, 보건복지부, 국회의원 등에게 각종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늘 모든 입주민을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 직장 정보, 소득 정도, 가족관계 사항, 일상생활 모습, 만나는 사람 등 지극히 민감한 개인정보나 노출하기 불편한 상세정보까지 기록을 요구했다”면서 “그때마다 입주민분들이 왜 이런 개인정보를 알려줘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적절한 대답을 해드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요구에 따라 매월 ‘입주민의 삶 동향 보고’를 작성해 제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최근 별도 조사를 6개월간 10차례 이상 진행했습니다. 최근엔 탈시설 전수조사라는 명목으로 모든 입주민의 면담과 개인지원기록을 확인하는 실태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월 15일 오후에 공문을 발송해서 ‘17일 금요일에 장애인 당사자와 만날 수 있게 일정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기관 입장에선 강제스럽고 일방적인 요구였습니다.
방문한 서울시 장애인탈시설 팀장과 담당 주무관에게 조사에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묻자, 입주민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주면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서울시는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우리 기관을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관’, ‘문제가 있어 은폐하려는 기관’으로 만듭니다. 그러니 다른 외부 일정이나 입주민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이 일들에만 매진해야 하는 일이 장기간 반복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서울시는 지원주택에서 병사로 사망한 고인의 개인정보도 무분별하게 요구했습니다. 사망사례관리라는 명분으로 서울시가 요청한 문서서식에는 탈시설 경위도 들어가 있는데요, 이건 대체 왜 들어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김민재 팀장)
현재 장안동 지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김현수 씨는 서울시의 조사가 모욕적이라고 분노했다. 김 씨는 “작년부터 서울시가 개인 동의 없이 지원주택센터를 통해 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너무 기분 나쁘다.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어디에 쓸지도 알 수 없다. 조사 나와서는 쓸데없는 질문 하고 활동가들 뒷담화하는데, 서울시는 그 시간에 복지사각지대나 없애 달라”고 규탄했다.
탈시설연대에 따르면, 서울시는 장애인 당사자의 동의나 일정에 상관없이 개인이 사는 집에 방문하여 마치 수사하듯 조사를 진행하고, 한 장애여성 집에는 공무원 남성 두 명이 방문해 큰 소리로 질문하는 등의 두려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질문 내용 또한 ‘나와서 사는 게 좋냐’, ‘시설로 다시 가라면 갈 거냐’, ‘탈시설은 스스로 결정했냐’는 식의 질문을 하며 장애인에게 탈시설한 삶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유도 질문을 했다고 한다.
-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수집, 반드시 법적 근거 있어야만 가능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탈시설장애인에 관한 과도한 개인정보요구는 공공기관의 불법적인 개인정보처리가 관행화된 것은 아닌가”라고 우려를 표하며 서울시의 불법적 행태를 지적했다.
오 대표는 “공공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는 반드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또는 업무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면서 “현재 서울시가 어떠한 법적 근거로 탈시설장애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정보주체인 장애인 당사자의 동의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령 서울시의 조사가 법령에 근거하더라도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기관과 정보주체에 통보했어야 한다. 개인정보수집 목적과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할지, 이후 제삼자에게 개인정보를 넘겨주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면서 “공공기관이 법령에 근거해서만 개인정보를 수집하도록 한 이유는 이처럼 권한을 남용해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정보를 수집한다고 어떤 큰 해를 끼쳤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정보를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이유는 개인정보보호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적인 삶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현재 서울시의 개인정보수집이 불법적인 것과 동시에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서울시는 노인, 청년, 한부모가정, 여성 등 다양한 유형의 시민에게 주거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 그 누구에게도 ‘당신이 지금 여기서 잘살고 있는지 조사하겠다’며 집에 함부로 찾아가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갑작스레 집을 방문해서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을 하며 민감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명백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다르게 대우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박경인 탈시설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은 “시설이 정말 좋다면 왜 시설에서 도망치듯 나오는 사람이 있는지 서울시는 궁금하지 않은가.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시설이 지금도 많은데 왜 그 시설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서울시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생 시설에만 살아야 한다는 그 생각부터 바꾸길 바란다. 이젠 장애인을 시설에만 살게 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게 바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유엔협약)에서 말하는 내용”이라면서 서울시에 유엔협약 준수를 촉구했다.